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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문학과 우주 이야기

소행성 '도날드요한슨'과의 조우: NASA 루시 임무의 새로운 발견

by 해피가드너 2025. 7. 28.

 

 

 

2021년 10월, 인류의 기원을 밝혀준 고인류 화석 '루시'의 이름을 딴 NASA의 탐사선 루시(Lucy)가 12년에 걸친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. 그 주된 임무는 목성 궤도를 공유하며 태양계 형성 초기의 비밀을 간직한 '트로이 소행성군'을 인류 최초로 탐사하는 것입니다. 이 머나먼 여정의 중간 기착지로, 2025년 4월 20일 루시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주 소행성대에 위치한 작은 소행성 (52246) 도날드요한슨(Donaldjohanson)을 근접 비행했습니다. 본래 이 조우는 2027년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트로이 소행성군 탐사를 위한 최종 시스템 점검이자 '완벽한 리허설'로 계획되었습니다. 하지만 이 연습 비행은 예상을 뛰어넘는 중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며, 단순한 기술 점검을 넘어 태양계 초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. 루시가 보내온 데이터는 도날드요한슨이 단순한 암석 조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었고, 행성 과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습니다.

 

 

소행성 도날드요한슨의 사진
출처: NASA

 

예상을 뒤엎은 첫인상: 접촉쌍성 소행성의 발견

 

2025년 4월 20일, 루시 탐사선은 도날드요한슨의 표면 약 960km 상공을 시속 약 48,000km의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갔습니다. 근접 비행 이전, 지상 관측을 통해 과학자들은 도날드요한슨을 지름 약 4km의 길쭉한 C형(탄소질) 소행성으로 추정하고 있었습니다. 그러나 루시의 고해상도 장거리 정찰 카메라 L'LORRI가 지구로 전송한 첫 근접 이미지는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. 이미지 속 도날드요한슨은 단일 암석 덩어리가 아니었습니다. 그것은 두 개의 작은 소행성이 매우 느린 속도로 충돌하여 파괴되지 않고 서로 달라붙어 형성된 접촉쌍성(contact binary)의 모습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. 마치 아령이나 두 개의 아이스크림콘을 붙여놓은 듯한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, 그 크기 또한 길이 약 8km, 가장 넓은 폭 3.5km로 기존 예상보다 두 배나 컸습니다. 이 놀라운 발견은 루시 임무팀에게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. 2023년 11월 첫 번째 탐사 대상이었던 소행성 '딘키네시'에서 위성 '셀람' 자체가 접촉쌍성임을 발견한 데 이어, 두 번째 목표물 역시 예상치 못한 복잡한 구조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. 이는 소행성대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기묘한 형태의 천체들로 가득 차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.

 

두 얼굴의 소행성: "놀랍도록 복잡한 지질학"

 

도날드요한슨의 놀라움은 단순히 접촉쌍성이라는 형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. 근접 이미지를 정밀 분석한 결과, 소행성을 구성하는 두 개의 덩어리(lobe)가 서로 뚜렷하게 다른 지질학적 특징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. 한쪽 덩어리는 다른 쪽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충돌구(크레이터)를 가지고 있어, 상대적으로 더 오래된 표면임을 시사했습니다. 이는 두 소행성이 각기 다른 시간과 환경 속에서 진화해오다 어느 시점에 합쳐졌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. 루시 임무의 수석 연구원인 할 레비슨(Hal Levison)은 이를 "놀랍도록 복잡한 지질학"이라고 표현하며, 두 개의 천체가 어떻게 파괴되지 않고 부드럽게 합쳐져 현재의 기묘한 형태를 이루게 되었는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졌습니다. 이처럼 한 소행성 내에서 발견된 지질학적 이질성은 도날드요한슨이 단순한 충돌의 결과물이 아니라, 복잡하고 다층적인 역사를 간직한 천체임을 의미합니다. 과학자들은 이제 두 덩어리의 색상, 구성 물질, 크레이터 분포 등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언제, 어디서, 어떻게 형성되었고, 어떤 과정을 거쳐 하나의 천체로 합쳐졌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.

 

행성 형성의 화석: 강착 과정과 충돌의 역사

 

도날드요한슨의 발견이 갖는 가장 큰 과학적 의의는 행성 형성의 기본 과정인 '강착(accretion)'에 대한 직접적인 시각적 증거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. 강착은 태양계 초기에 존재했던 미세한 먼지 입자들이 정전기적 힘으로 뭉치고, 이 작은 덩어리들이 다시 중력에 의해 서로 부드럽게 충돌하며 합쳐져 점점 더 큰 행성체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. 도날드요한슨의 모습은 바로 이 강착 과정의 한 단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습니다. 두 소행성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온전히 형태를 유지한 채 결합했다는 사실은, 이들의 충돌 속도가 사람이 걷는 속도만큼이나 매우 느렸음을 시사합니다. 이는 태양계 초기 소행성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에 대한 중요한 물리적 단서를 제공합니다. 더 나아가, 도날드요한슨은 약 1억 5천만 년 전 더 큰 모체(母體) 소행성이 다른 천체와의 격렬한 충돌로 파괴되면서 형성된 '에리곤(Erigone) 소행성족'의 일원으로 추정됩니다. 따라서 이 작은 파편의 구조와 지질학적 특징을 연구하는 것은 1억 5천만 년 전 태양계에서 일어났던 거대한 충돌 사건의 성격과 그 여파를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. 이처럼 도날드요한슨 근접 비행은 본래의 목적인 '리허설'을 넘어, 행성 형성의 근본 원리와 소행성대의 역동적인 진화 과정을 동시에 밝혀주는 일급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.